[이 글은 음악싸이트 '바람새(windbird.pe.kr)'에서 빌려온 글입니다.

이름:박석 (
woosonps@smuc.ac.kr)
:
http://www.paraboki.net
2003/8/20(수) 00:53
조회: 862 회


나에게는 오래된 친구가 하나 있다. 고등학교 일학년때부터 알게 되어 그 뒤 오랜 세월 우정을 나누고 있는 친구다. 그 친구와 우정을 맺게 된 사연에 대해서는 이곳 에서 <평생의 친구를 만나게 해준 스카보로의 시장>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가 있다.

요즈음 비가 많이 내린다. 지금도 창밖에는 굵은 장마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면 옛날 이 친구와 같이 부산의 산복도로를 우산도 없이 하염없이 걸었던 생각이 난다. 산복도로는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도로라는 뜻으로서 부산의 아픈 상처라고 할 수 있는 판자촌을 가로지르는 도로이다. 그 산복도로에서는 부산항구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이면 우리는 자주 우산도 없이 하염없이 비를 맞으면서 그 도로를 걷곤 하였다. 그때가 아마 대학교 1,2학년 시절이었으리라.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보다 훨씬 조숙하였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들어 비로소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이런 저런 책들도 읽기 시작할 때 이 친구는 벌써 그 방면의 도사가 되어 있었다. 당시 고등학생들은 지금보다는 독서도 훨씬 많이 하였고 전반적으로 지적으로 훨씬 성숙되었지만 이 친구는 정말 독서량도 대단하였고 참으로 조숙하였다. 중학교 다닐 때부터 니체 등에 심취하였고 샤르뜨르니 캬뮈 등의 실존주의 철학에도 심취하였다. 내가 고등학교 들어서 겨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니 <지와 사랑>이니 생땍쥐뻬르의 <어린 왕자>와 <야간비행>, 톨스토이의 <부활>, 스땅딸의 <적과 흑> 등의 소설에 심취하였던 것에 비하면 지적으로 훨씬 성숙하였던 것이다.

이 친구가 그렇게 조숙하여던 것은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환경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친구가 살았던 곳은 육이오 사변때 형성된 범내골 판자촌, 가난의 상징이었던 동네이다. 옛날에는 숲이 깊어 범이 자주 출몰하였다고 하여 범내골이라 하였지만 살곳이 없어 산꼭대기까지 따닥따닥 집들을 지어 범은 커녕 산토끼도 보기 힘든 곳이었다. 공부도 잘하였고 자존심도 강하였던 그 친구는 가난 속에서 남들보다 일찍부터 인생과 세계에 대해 눈을 떴던 것이다. 곤경은 사람을 가장 빨리 성숙시키는 도구라는 말이 여기서도 통하였으리라.

이 친구는 재수 시절에 서울에 올라왔다가 재주도 좋게 당시 숙대 3학년 여학생을 사귀었다. 조숙한 친구답게 비록 재수생이었지만 독서로 단련된 달변과 약간은 고독하고 우울한 분위기로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녀는 전라도 광주에 사는 꽤 부유한 집의 아가씨였다. 둘은 근래에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감정을 넘어서 또한 대학생과 재수생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 그리고 나이차와 빈부차를 넘어서 정말 순수하게 사랑하였다. 친구와 나는 재수시절 서로 각자 공부하느라 자주 만날 시간은 많이 없었지만 한번씩 만나면 그때까지 한번도 이성교제의 기회가 없었던 나는 그 친구의 찐한 첫사랑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부러워하면서 귀를 귀울였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 친구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그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은 깨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졸업반이 되자 집으로부터 시집 가라는 독촉에 시달리게 되었다. 지금이야 여자가 30이 한참 지난 뒤에 결혼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당시는 대학 졸업할 때가 되면 결혼을 생각해야 되고 특히 지방인 경우에는 더욱 심하였다. 그녀는 결국 현실의 압력때문에 순수한 사랑을 포기하였던 것이다.

친구는 정말 괴로워하였다. 그러나 돈이 없어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니고 점심값이나 버스표값도 주변 친구들에게 빈대를 쳐야 하는 그로서는 서울에 올라오기가 쉽지가 않았고 게다가 직접 부딛히기가 싫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는 나에게 여자 친구를 만나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나는 친구 때문에 수업을 제껴가면서 숙대에 몇 번이나 처들어갔다. 그 당시 주로 많이 재꼈던 과목은 교양불어였는데 덕분에 나중에 D 학점을 받았다. 나는 내 애인도 아닌데 숙대 앞 어둠컴컴한 다방에서 친구를 대신해서 순수한 사랑의 소중함을 그녀에게 호소하였고 친구를 위해서 제발 떠나지 말라고 하소연하였다. 나의 하소연에 그녀는 그냥 말없이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친구를 떠나가버렸다. 친구에게 많은 아픔을 남기고. 그해 봄은 그렇게 잔인하게 흘러가버렸다.

여름 방학때 부산에 내려온 나는 친구의 아픔을 달래주려고 자주 술도 마시고 때로는 서면의 다방, 아마 천우장 뒤의 전원다방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거기서 하루 종일 죽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는 그냥 하염없이 거리를 걷곤 하였다. 친구의 집이 범내골의 판자촌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산복도로를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걷곤 하였다. 그리고 고래 고래 노래를 불렀다. 당시 첫사랑의 상처 속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친구와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남부럽지 않게 애틋한 사랑을 해보고 싶었던 나는 빗속을 거닐며 하염없이 사랑 노래를 불렀다. 그것도 비와 관련된 사랑노래를. 지금 생각하니 역시 청춘은 아름다웠다.

그 당시 여러 노래를 많이 불렀지만 가장 기억에 남은 노래는 송창식의 <비와 나>라는 노래이다. 그리 많이 알려진 노래는 아니지만 당시 우리의 감성에는 딱 맞던 노래였다. 마침 당시 우리 집에는 몇 장의 엘피판이 있었고 그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엘피판은 바로 송창식 일집 이었다. 그 판은 애인, 꽃보다 귀한 여인, 꽃 새 눈물 등의 주옥 같은 곡이 실려 있어 정말 판이 지지직거릴때까지 열심히 들었던 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비와 나>는 여름 장마 비에 참으로 어울리는 노래다. 그래서 나는 비가 올때면 웬지 그냥 이름모를 그리움와 애틋함으로 그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LP] SONGCS 1 전곡 19750830
언제부터 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내가 이 빗 속에 서 있었을까
노을에 물들은 구름처럼 꿈 많은 소녀
꿈 찾아 꿈을찾아 저 멀리 떠나 버렸네
태양 앞에서 약속했었지
언제까지나 길동무 되자고
언제부터 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까
내가 왜 혼자서 이 빗속에 울고 있을까

오늘밤 창밖에서 하염없이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니 다시금 아름답던 젊은 날의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 친구의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하였던 그 숙대 물리학과 3학년 학생은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25,6년전에 결혼을 하였을 것이니 지금은 장성한 자녀를 둔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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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팬더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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