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 송창식을 돌려다오

 


[송창식]그래그럴수도있겠지-19980121MBC가요콘서트
 
 

1998.8.31.월 / 딴지 연예부 기자

우리 엄니의 '스타'는 송창식이다. 이 노친네가 어쩌다 한번씩 송창식이 TV에 나오면 그 앞에 바짝 다가 앉아 넋을 잃고 보신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장면이 연출되는 즉시 우리 아부지의 염장 지르기가 들어간다.
"쟤는 왜 가재미 눈을 하는거냐, 약 먹었냐, 한 손은 왜 쳐들고 지랄이야..."
그럼, 우리 엄니는
" 뭐요? 참네 이 아자씨가 예술을 모르네 예술을... "
그 즉시, 20년짜리 논쟁이 불이 붙는다. 논쟁은 아주 간단하다.
엄니 : " 송창식은 예술가다 ! "
아부지 : " 송창식은 약 먹었다 ! "
그리고는 두 분다 30대의 자식들 동의를 구하기 위해 설득전에 돌입한다.
엄니 : " 저게 예술이지, 뽕 맞아서 그러는거냐 "
아부지 : " 저게 뽕 맞아서 그런거지, 예술이냐..., "
이런 광경을 보면 난 흐믓해진다. 당신들만의 '스타'를 아직도 품고 있을 정도로 가슴에 열정이 남아 있다는 걸 이런 식으로 확인하고 나면 난 그날 하루종일 흐믓하고 즐겁다. 물론 그런 논쟁의 결말도 언제나 지난 20년이 넘도록 똑같다.
엄니 : " 아이구 당신이 그렇게 불러봐 그럼. "
아부지 : " 참네, 나도 약 먹으면 저만큼 불러 ! "
아직도 그렇게 우리 엄니에겐 송창식이 '스타'이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난 "들국화"에 미쳤었다.
시험이 바로 전날인데도 들국화 공연에 가서 그들이 뿜어대는 열기를 들이 마시면서 "행진하는거야"를 함께 부르며 미친듯이 열광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가곤 했다.
공부를 하다 답답하거나 불안하면 그들의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부르기도 했고, 옥상에 올라가 주먹을 불끈쥐고 휘두르며 " 앞으로 ! 앞으로 ! "를 고래 고래 소리 높혀 불러제끼는 달밤의 체조를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하고 가슴이 탁 트혀 마음이 진정이 되기도 했고....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어느날 갑자기 들국화가 해체되었다. 난 너무도 섭섭했었고 마치 내 사춘기가 해체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내 사춘기가 그렇게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요즘도 노래방을 가면 난 '행진'이나 "그것만이 내세상" 불러보곤 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 노래는 그때의 즐거운 기억과 사춘기 시절의 힘을 되살려 주곤한다. 때론 노래하다 자지까지 선다...
들국화는 그렇게 나의 '스타'였었고, 지금도 '스타'이다.

방송국에서 10대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인기를 누리던 가요프로들을 대폭 정리한다고 몇달전에 그랬었다. 하는 척 하다가 모조리 말짱 꽝됐지만 말이다.

주말 저녁 나절이면 어느 방송을 봐도 졸라 비슷비슷한 '스타'들이 나와 졸라 비슷비슷한 옷차림과 졸라 비슷비슷한 노래를 졸라 비슷비슷한 포즈로 불러제낀다. 그 프로들을 보다가 난 가끔 살짝 돌기도 한다.
쉰세대란 말은 듣기 싫어서 웬만하면 노래와 가수와 춤을 매치시켜 외워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도대체 이 아쉐이들은 왜 이리 떼거리로 나오는 거냐...
삼류 하우스댄스라도 따라 해보려 했건만 춤은 또 왜이리 아크로바틱한거냐... 그리고 비슷한 애덜이 왜 이리 많냐...
그리고 결정적으로, 좀 얼굴 외울만 하면 왜 이리 새로운 애덜이 자꾸 겨나오는거냐...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포기해버렸다.

그렇다고 그런 10대들의 '스타'가 아무짝에 소용없는 거라고는 말해버리고 싶지는 않다. 송창식을 좋아하시는 우리 엄니가 들국화를 이해하지 못하셨던 것처럼 내가 그들의 '스타'를 잘 이해하지 못할 뿐, 그들만의 스타를 죽어라 죽어라 하고 싶진 않다. 그리고 분명 그런 '스타'들이 10대들에게 발휘하는 순기능도 있을 것이다. 엄니와 나의 세대 스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런 스타에 잘 빠지는, 그래서 돈이 되는 10대 여자애들에만 초점을 맞춰 집중공략해왔던 방송국과 매니지먼트회사들의 천박한 상업주의에는 말뚝만한 똥침을 지긋히, 깊수키 찔러주고 싶긴 하지만 말이다.

이 부분은 참으로 환장할 지경인데, 우리나라엔 도대체가 10대들을 위한 대중문화밖에 없었다. 방송국이 돈이 되는 10대들에게만 매달려 다른 세대들에게 자신들만의 스타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왔던 문화적 '횡포'는 천민 자본주의의 소산 아니겠는가.

10대들만 스타가 필요한 건 결코 아니다. 나도 필요하고 우리 엄니 세대도 스타는 필요하다. 아니 모든 세대가 자기 세대에 걸맞는 자신들만의 '스타'가 필요하기도 하고 또 가지고 있기도 하다.

스타는 작은 삶의 윤활유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없어도 죽지는 않겠다 만은 가끔 그들 덕택에 잠시 추억에 젖어 보기도 하고, 삶이 조금은 즐겁고 부드러워 지기도 하고, 활력이 되기도 한다. 그만하면 존재가치는 충분하다.

이제 방송국들이, 10대가 아닌 세대들에게도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들을 보고 즐거워하고 과거를 떠올려 보고 그때 그 기분에 젖어볼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보다 자주 주어야 한다는 걸 좀 깨달아 줬으면 좋겠다. 10대들에게만 매달리는 건 이제 좀 그만해 줬으면 한다. 그게 설혹 돈이 안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각 세대에게 자신들만의 "송창식"을 돌려 줬으면 좋겠다.

Posted by 팬더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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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심우관 2009.09.11 1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적으로 글쓴이의 주장에 동감하면서....우리세대에게 송창식은 오늘날 치기어린아이들의 소시나 동방신기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정서적으로 일치되는 존재였지요.그가 지그시 눈을 감고 창밖에는 비오고요.를 부를라 치면 절로 심장이 강렬하게 진동하고 뜨거운 감동이 미리 가슴에 자리를 잡을정도였으니....ㅋ 그가 어느새 60을 넘어섰군요.세월이 그만치 흘렀다는 증거인데..아직도 우린 그를 경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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