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조영남] 송창식의 쎄시봉 데뷔


세시봉데뷔때 부르신  Una furtiva lagrima (남몰래흐르는 눈물) 2014년 11월 23일 '쏭아'에서
 
쎄시봉 시절, 송창식의 출현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누구나 쎄시봉으로의 출현은 극적일 수밖에 없었으나 송창식의 경우 그 극적 구성이 두드러졌다.

홍익대 출신의 명사회자 이상벽으로부터 오늘의 쎄시봉 가수가 소개되었다. '송창식!' 남루하기 짝이 없는 옷차림에 낡은 밤색 군화를 무겁게 끌면서 한 인간이 쎄시봉의 간이무대를 향해 층계를 올라서고 있었다. 기타를 둘러맨 사나이가 허수아비 모양의 팔과 의족처럼 따로 노는 다리를 이끌며 쎄시봉 무대에 올라왔다. 흙 퍼 올리는 기중기의 몸짓으로 기타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까닭을 알 수 없는 엷은 미소가 큰 입에 번져 있었다. 그 미소는 영화의 흉악범들이 범죄 직전에 짓는 야릇한 형상의 미소였다. 누가 저 자의 심중을 가히 헤아릴 수 있으랴.

기타는 시골 약장수의 것보다 더 낡아 보였다. 긴 손가락으로 마이너 조의 아르페지오를 읊어 나갔다. 한음 한음 신중한 연주였다. 그러다가 청아한 그의 음성이 기타의 선율에 섞여 나왔다. "우나후루 티바 라그리마아---" 참으로 뜻밖의 곡조였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그 유명한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었다. 오페라 아리아를 오페라 가수답지 않은 평범한 목소리로 그러나 조금치의 품위도 떨어뜨리지 않은 채 끝까지 불러 나갔다. 대한민국 음악사상 오페라 아리아를 자신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정식으로 관객 앞에 열창해내기는 송창식이 처음이었으리라. 최고의 찬사는 눈물이었다. 쎄시봉 식구들을 다양했다. 실의에 빠진 재수생에서 일류 대학생까지 그리고 무교동 청진동 주변의 이름있는 건달 주먹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쎄시봉의 식구들이 눈물에 젖었다.

송창식은 그렇게 시작부터 신비의 사나이였다. 피리를 부는 느낌의 사람이었다. 스스로 기피하는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으나 우리는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우리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인천쪽에서 왔을 것이라는 추측뿐이었다. (조영남)

 

Posted by 팬더54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