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의 '젊은 노래들']
조희창의 소리나는 편지, [연예오락] 2002년 02월 07일 (목) 14:39


<글․조희창(음악 칼럼니스트)
lazyriver@lycos.co.kr> 좋은 음향 기기로 완벽한 음을 담은 요즘의 음악. 하지만 여백을 살린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의 음악을 당해낼 순 없습니다.


얼마전 전라도의 산사들을 돌아보다가 거의 돌아버릴 것 같은 마음이 되어버렸습니다. 좀 크다 싶은 절마다 전통 찻집을 끼고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불교 명상음악들이란 것이 한결같이 신디사이저 반주에다 무겁고 지루한 목소리로 소위ꡐ지혜의 말씀ꡑ을 낭독하는 것이었어요.ꡐ산사ꡑ와 ‘신디ꡑ는 발음은 비슷할지 몰라도 정서상으론 완전히 배치되는 말입니다. 그런 식의 신디사이저 음악엔 도무지 여백이란 게 없거든요. 그런 배경 음악에 그런 지혜의 말씀은 깊이나 무게의 강요를 넘어, 조악에의 강요라고 생각합니다. 목탁 소리 하나면 되는데, 그것마저 치기 힘들면 그냥 풍경 소리나 바람 소리면 되는데, 산사에서마저 여백을 못 찾는다면 거기 왜 가겠어요.


누군가 나에게 어떤 게 좋은 연주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 중에 반드시 들어갈 항목 중 하나가 ꡐ여백을 어떻게 살려냈는가ꡑ입니다. 음보다는 음과 음 사이의 공백을 알고 있는가를 묻게 되는 거죠. 특히 국악이나 바로크 음악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지만 재즈나 가요라도 마찬가지예요.


송창식이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요즘의 10, 20대 사람들이라면 잘 모를 수도 있고, 고작 기억한댔자 열린 음악회에서 고래 사냥 부르는 정도로만 알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송창식은 한국 포크음악 역사를 말할 때 김민기, 한대수, 양희은 등과 함께 빠트릴 수 없는 명가수입니다. 1968년에 그가 윤형주와 트윈 폴리오를 결성해서 내놓은 음반은, 같은 해 벌어진 한대수의 공연과 함께 한국 포크사의 시발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처럼 살 불지 않아서 보기도 좋던 옛 시절 송창식의 음반을 올려 놓았습니다.(서울음반 SRCD-3118) 절판되었다가 다시 CD로 나왔는데 구하기가 쉽진 않아요. 음반 가게 다니다가 눈에 띄면 무조건 사라고 권하고싶군요. 이후에 송창식이 서울 음반에서 과거의 곡들을 죄다 모아서 4장의 CD로 만든 음반도 있는데 정서적으로는 이 음반을 당할 수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양희은이나 김민기의 음반도 새로 녹음한 것보다 과거의 음반이 더 좋다고 봅니다.


이 당시 송창식은 정말 대단한 명곡들을 연타로 날렸습니다. 이장희가 작사한 ꡐ창밖에는 비오고요ꡑ 마지막 부분의 그 절묘한 종주장식, 송창식이 스타덤에 오르게 된 ꡐ딩동댕 지난 여름ꡑ, 임희숙 이후로 최고의 절창이라 생각되는 ꡐ진정 난 몰랐네ꡑ, 최인호가 작사해 준 ꡐ꽃 새 눈물ꡑ의 그 애상스런 가사.


한 때 내 친구가 즐겨 부르던 ꡐ철지난 바닷가ꡑ, 내가 당시 백마 카페에서(그 때 백마는 참 좋았습니다. 기차에서 내려 어두운 길을 개구리 소리 들으며 가서, 노래와 술에 저 혼자 취해오던 맛, 이 역시 다시 경험하기 힘들 거예요) 공술 얻어먹으며 맨날 부르던 상아의 노래, 꽃보다 귀한 여인, 내 젊은 시절 옛 애인 앞에 놓고 세레나데로 부르던 좋아요, 그 여자에게 걷어차여서 술 취하면 혼자 부르던 애인과 나그네, 그리고 꽃 새 눈물과 함께 이 음반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사로 꼽히는 라스트 곡 밤 눈에 이르기까지. 요즘처럼 신디사이저니 뭐니 거의 쓰지 않고 대부분 어쿠스틱 기타나 피아노로 반주해서 더 없이 좋아요. 비록 녹음과 음질은 열악하지만, 자켓사진까지도 촌스럽기 그지없지만, 그게 뭐 대수겠어요.


나이가 서른을 넘긴 사람이라면 송창식의 이 음반, 하나쯤 살 만 해요. 우리 앞으로 사는 동안 이런 가사, 이런 노래 다시 대할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점점 없어져요. 거의 희박해요. 겨울밤에 혼자 차 한잔 마시면서 들으면, 10분내에 과거로 여행 할 수 있을 거예요. 뚝, 뚝 여백 있어 좋았던 그 시절, 따스하고도 적적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최상의 아날로그적 매트릭스임을 보장합니다만….


송창식1집['75] - 03 밤눈


한밤중에 눈이 나리네. 소리도 없이 / 가만히 눈감고 귀기울이면
까마득히 먼데서 눈맞는 소리 / 흰 벌판 언덕에 눈 쌓이는 소리.
당신은 못 듣는가. 저 흐느낌 소리 / 흰 벌판 언덕에 내 우는 소리.
잠 안 들면 나는 거기엘 가네 / 눈송이 어지러운 거기엘 가네.
눈발을 흩이고 옛 얘길 꺼내 / 아직 얼지 않았거든 들고 오리다.
아니면 다시는 오지도 않지 / 한밤중에 눈이 나리네. 소리도 없이.
눈 내리는 밤이 이어질수록 / 한 발짝 두 발짝 멀리도 왔네.

‘밤 눈- 최영호 작사, 송창식 작곡
Posted by 팬더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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