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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net 봄여름가을겨울의 숲. 그 열아홉번째 이야기 송창식편(20130925)

 

   봄여름가을겨울의 숲 / 음악을 말하다. 톡톡 

   2013/10/01 17:49


  "당신의 음악이 이야기가 되는 곳"

 

 

 

  가을 바람이 선선한 요즘,

  술렁(?) 꿀렁이는 우리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최고의 시간이 왔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가을비를 촉촉히 내려줄 오늘의 주인공은...?

 

  한국 가요계가 낳은 전설적 싱어송라이터, 영원한 가객, 시대를 초월하는 명곡의 주인공 송!창!식!

  [Mnet 봄여름가을겨울의 숲] 열 아홉번째 이야기

 

 

   [#1. 송창식의 봄 _ 하루의 시작처럼 생동감 있는 송창식의 봄을 만나다]

 

 

 

 

  ♪ 한번쯤

 

 

 

 

  1974년 송창식이 군제대 후 처음으로 만든 대중가요 <한번쯤>

  서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애태우는 남녀의 모습을 표현한 곡으로 대중들의 큰 인기를 얻으며

  그가 스타로 자리잡은 곡.

  음악적 고집을 버리고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었던 그의 노래입니다.

 

 

 


 

  "풋풋하고 아름다웠던 가요계 거장, 송창식"

 

 

 

 

  송창식의 봄 첫 번째 곡, <영이야>

  1980년대 발매된 <80' 가나다라> 송창식 앨범 수록곡으로 첫사랑의 설렘을 가사로 표현해 포크

  가요의 정수를 보여준 곡인데요~

  잔잔한 멜로디와 순수한 노랫말, 유년시절 감성을 울리는 깊고 따뜻한 목소리로 전하는 사랑의

  세레나데 입니다.

   "생소하죠, 만들어서 발표한지는 오래됐는데 말하자면 그렇게 유명해지지 않은 노래예요"

  1980년대 당시 유행하지 않았던 곡 스타일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숨어있는

  명곡입니다.

 

 

 

 

  학창시절 클래식을 시작으로 음악계에 들어선 송창식. 다른 음악의 유혹속에서도 그의 가슴

  속을 굳건히 지킨 클래식.

  클래식에 매진하던 시절, 듣지도 않았던 당시의 가요들을 알고 있었다는 송창식.

  "그러니까 내가 대중가요 하도록 되어 있었나봐"

  고등학교 시절 클래식을 전공하며, 시작된 송창식의 음악 인생.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깊고 풍성한 발성은 그의 노래 속에서 더욱 빛나게 되었습니다.

 

 

 

 

  세시봉 데뷔 당시, 팝송을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송창식 혼자만 오페라 아리아를 열창했다고

  해요~

  "팝송은 한 곡도 아는 곡이 없었거든"

  각 대학의 명물을 소개하는 대학의 밤 행사에서 대학생을 사칭해 세시봉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는 그.

  우여곡절 끝에 오른 무대였지만 생소한 오페라 아리아 열창에 관객석은 말그대로 싸~~늘 했다

  고 합니다.

  "갑자기 조용해졌지, 나를 이상한 놈으로 봤으니까"

 

  

 

  70년대 청년문화의 산실 세시봉에서 시작된 송창식의 새로운 운명.

  클래식 발성의 송창식과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윤형주와의 만남. 포크 듀오 트윈폴리오가 결성

  되었습니다.

  "사실 트윈폴리오 할 때는 나는 팝송에 대해 너무 무식했어요. 아는게 없었어요"

  팝송을 전혀 몰랐던 당시 공연 래퍼토리는 팝송광 윤형주의 몫이었다고 해요.

  정해진 팝송의 악보를 따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고, 그렇게 지낸 2년이라는 시간은

  송창식을 가수로서 기본을 다지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계절의 시작인 봄처럼 하루의 시작인 아침을 만나볼 시간 <참새의 하루>

  포크는 물론이고 트로트와 가곡을 넘나들며 본인 만의 독특한 음악적 감성으로

  새로운 해석과 시도를 하던 송창식의 또 다른 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곡으로 보편적인 정서를

  독특한 양식으로 노래한

  따스한 봄볕 같은 송창식의 두 번째 봄 노래 입니다.

 

   

 

  가사를 쓸 때, 은유와 비유를 주로 이용한다는 송창식.

  하지만 <참새의 하루>는 하루의 생활이 눈 앞에 풍경처럼 그려지는 현실적인 가사로

  노랫말 속 참새를 통해 일반대중, 소시민을 이야기 했다고 하는데요~

 

  

 

  "일어나서 운동하고 노래하고~ 그게 다예요. 사실은"

  가요계 거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소한 하루.

  "노동력 같은 걸 말할 때는 내가 조금 부끄러워요. 그러나 노래를 노동일이라고 생각하면 확실하죠"

  결국 참새의 하루 속 참새는 송창식 그의 삶 자체였습니다.

 

  

 

  매일 하루 3시간 이상 음정과 기타의 기본을 연습한다는 송창식.

  45년 동안 지치지 않고 지켜온 거장의 고집은 200여곡의 명곡들을 탄생시켰습니다.

  "내가 예고가서 제일 처음 깨달은게 뭐냐면..아.. 음악이란게 그냥 하는게 아니구나.."

  음악의 길에도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자연스러움과 철저한 계산을 병행하게 된 그의 음악은 우리네 삶을 노래하듯 소소하지만 깊은

  울림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송창식...그의 노래는 음악을 위해 노력하는 그의 인생이 고스란히 묻어난 산물입니다.

 

 

 

      [#2. 송창식의 여름 _ 송창식의 뜨거운 전성기, 여름이 시작되다]

 

 

  

 

  1970년대 대중가요계에 큰 획을 그었던 송창식의 뜨거웠던 청춘이야기.

  "진짜 힘은 젊었을 때 나오는 근육의 힘이 아니예요. 공력이지.."

  오랜 시간 수련해 쌓은 힘이 젊음의 힘보다 크다고 말하는 송창식.

  진짜 힘이란 오랜 시간 쌓은 정성과 노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45년 그의 내공.

  과연 누가 따라갈 수 있을까요?

 

  

 

  마치 무도를 연마하는 듯 비슷한 음악의 길.

  그 대단한 길을 걸으며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때를 기억합니다.

  1975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왜불러> 열풍에 휩쌓였었는데요~

  "굉장히 히트했어요, 그 해의 노래로 선정되었으니까. 그게"

  파격적인 구어체 가사와 송창식 특유의 시원한 보컬이 돋보이는 곡으로

  태양과도 같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의 음악은 뜨거운 여름을 닮았습니다.

  "그 때 당시에는 반말로 된 노래가 최초였을지도 모르겠어, 그 당시 반말이라는게 없었어요.

  노래 가사에"

 

 

 

  "평범하다고는 볼 수가 없어요"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던 송창식의 청년시절.

  가수 초창기엔 음악에 대한 날선 고집을 부리며 ,주변에서 이상하다고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냥 되는대로 살았지. 닥치면 그냥 거부감도 없이 지나가고"

  어떤 범주에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온 송창식의 청년기.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은 자유로운 아티스트, 그의 음악 역시 자유로워 질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중도 포기하게 된 성악.

  하지만 오히려 진로 변경 후 물 대중음악계의 물 만난 고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하루종일 음악 속에 살았어요. 그 속에서 작곡도 했으니까.."

 

  

 

  1974년 <한번쯤>, <피리부는 사나이>, 1975년 <왜불러>, <고래사냥> 등등..

  발표하는 곡마다 큰 인기를 끌었던 청년 시절 송창식의 눈부신 전성기.

  1975년 최고인기 가수상을 시작으로 1973년~1980년(1978년 제외) 연속 10대 가수상을 수상했으니..

  이건 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거 아닐까요??

  "히트라는건.. 대중들과 배짱이 맞아야 해요, 그래서 나는 아무리 어려운 곡을 만들어도 대중들이  

  좋아해줬어요.

  배짱이 맞으니까"

 

  

 

  "내 생각은 달랐어요, 우리가 배짱이 맞는데 통하면 되는거지..."

  히트곡에 대한 그의 고집과 신념.

  다행스럽게도 대중들은 그의 고집을 이해해 주었고, 결국 대중들은 그의 노래를 사랑해주었습니다.

  그의 창작열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 앨범으로 출시된 곡만 약 200여곡, 미발표곡은 무려 1000여곡 

  이 넘었다고 해요~

  수시로 곡을 만들어 메모처럼 기록하는 곡에 대한 그의 열정.. 하지만 그는 겸손하게 말합니다.

  "천재가 아무리 뛰어나도 대중을 당할 순 없어요"

 

  

 

  "이번 노래는 <딩동댕 지난 여름>이라는 곡 인데요~"

  시인 임진수가 쓴 글에 곡을 붙여 완성했다는 <딩동댕 지난 여름>

  절제된 리듬으로 노래와 연주가 전개되는 1절에서 순간적으로 장조로 조성이 바뀐 뒤 세박자의

  지름 향연이

  전개되는 곡으로 초창기 송창식의 대표 히트곡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곡입니다.

 

  

 

  <왜불러>와는 또 다른 느낌의 곡 <딩동댕 지난 여름>

  "내가 제일 창피한 곡이 이 곡이예요"

  시의 운율과 곡의 운율이 맞지 않는 노래로 창법의 힘으로 운율을 커버한 곡이라고 하는데요~

  "노래할 때 강약을 바꾸는 거죠, 싱커페이션이예요. 직접 노래 하는 바람에 대중들한테 어필이

  되지~

  직접 노래를 안했으면 그건 아니지...."

  작곡가 송창식에게는 미운 오리 새끼와도 같은 곡 <딩동댕 지난 여름>

  하지만 그에게 새로운 창법을 알려 준  고마운 곡이기도 합니다.

 

  

 

  "그땐 죽고 싶었지, 근데 죽고 싶은 순간은 바로 고거예요, 다시 기타치는 기회가 생겼으니까!"

  고통으로 다가왔던 순간은 결국 순간으로 지나갔습니다.

  "누가 1등하면 난 2등하면 되는 거지. 그거예요. 간단해"

  낙천적인 삶을 지향하는 이 시대의 뮤지션 송창식.

  좌절과 고통을 포기가 아닌 새로운 도전으로 승화시키는 그만의 삶의 방식.

  결국 누구나 시련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라는 소중한 진리를 깨워줍니다.

 

  

 

  노래로 전국을 휩쓸던 과거는 분명 송창식의 사회적인 전성기였습니다.

  "그러나 그건 별로 의미 없어요. 노래를 하는 인생에 있어서 지금 보다  그 때가 못했는데 어떻게

  그  때가 더 좋겠어요"

  그에게는 의미없는 전성기라는 단어..

  단지, 가수 송창식의 노래 인생은 과거부터 점점 성장해 왔을 뿐, 그 어떤 전성기도 그에게는

  중요치 않습니다.

  인기에 연연하는 현 뮤지션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그의 한마디. 가뭄에 단비처럼 반갑기만

  합니다.

 

 

 

  "이게 앞길이 보이던 안보이던 계속 하는거예요. 그럼 무조건 다음이 나오고 또 다음이 나오고

  그래요"

  비록 어두운 터널 속 같은 인생이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면,

  비로소 만나게 될 인생의 전성기가 있다고 자신하는 그의 한 마디.

  불안했던 홍코의 마음을 조용히 따뜻하게 다독여 주었습니다.

  과거의 가수가 아닌 현재 진행형을 살고 있는 가수 송창식.

  과거부터 현재까지 멈추지 않고 달려온 그의 음악적 전성기.

  한여름 태양같이 뜨거운 가수 송창식의 노래는 곧 열정입니다.

 

  
 

 

  

 

  모든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며 공감과 감동의 노래를 부른 시대의 상징.

  서양 음악 안에서 한국적 창법과 정서를 담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을 구축한 아티스트.

  송창식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영역을 구축한 진정한 예술가.

  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이자 공감의 노래를 불렀던 국가대표급 가수 송창식.

 

  그의 음악의 가을과 겨울이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2013년 10월 2일 수수한 수요일 밤 12시 [Mnet 봄여름가을겨울의 숲]

 

  시.대.의.상.징.긍.정.의.에.너.지.

  송.창.식.의.가.을.과.겨.울.이.

  [출처] Mnet 봄여름가을겨울의 숲. 그 열아홉번째 이야기 _ 송창식편(20130925)

  작성자 엠넷홍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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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팬더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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